2007년 10월 26일
신의 물방울: 뤼 뒤몽 시음회(Lou Dumont)

제가 개인적으로 와인에 대해서는 낫놓고 'ㄱ'자를 아는 척하면서 사실은 모르는 지라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입니다.
시음 와인 리스트
1. Cremant de Borurgongne (크레망 드 부르고뉴)
2. Ladoix 2004 (라 두와)
3. Gevrey Chambertin 2003 (쥬브레 샹베르땅)
4. Vonse-Romanee 2002 (본 로마네)
5. Nuit-St-Georges 2002 (뉘 생 죠르쥬)
6 Corton Grand Cru 2003 (꼬르똥 그랑 크뤼)
서빙된 순서는 1→4→3→5→2→6
100% 샤르도네로 만들었다는 스파클링 와인인 크레망은 원래 브랜드 이름이 붙지 않는다고 합니다만, 그런 설명은 아무래도 상관 없을 정도로 이건 정말 맛깔 납니다. 싸하게 퍼지는 탄산 속에 포도의 감미와 산미가 톡톡 터지는 맛 앞에 어지간한 샴페인은 맥을 못출 듯. 뛰어난 강력한 가격대 성능비! 코스트 퍼포먼스의 진수! 라고 칭찬할 만합니다. (찾아보니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인 앙리 자이에가 극찬했다고 하는군요.)
본 로마네는 향이 너무 좋아서 처음에는 마시기가 좀 주저 되더군요. 꽃은 물론 화전을 해서 먹기도 하지만, 실제로는 향기를 즐기는 거잖아요? 향기만 마시다가 동행이 30분 정도 늦게 도착한 후에야 겨우 입을 댔는데, 화사~~하다고 해야 할지, 처음 서빙된 레드 와인인 이유가 납득이 가더랍니다.
쥬브레 샹베르땅은 목 넘김.....이라고 하면 맞을 지 어떨지 모르지만, 목으로 꼴깍꼴깍 잘도 넘어가더랍니다. 향은 본 로마네에 비해 꽃 보다는 좀 더 과일 냄새에 가까운데 여운이 좀 짧은 게 아쉬웠지만, 6잔 중에서 제일 빨리 마셔버렸다는 건 그 만큼 입에 잘 붙는다는 거겠죠? 이건 와인 처음 마시는 분들께 좋을지도 모르겠군요.
뉘 생 죠르쥬에 대한 처음 감상은 시다~~~ 였는데, 이게 웃긴게 조금 있다가 다시 마셔보니 산미 속에 뭔가 묵직한 게 들어 있더군요. 좀 안어울리는 표현일 지도 모르지만, 산미가 껍질이라면 그 안에 들어있는 묵직하고 풍부한 뒷 맛이 내용물 이라고 할 수 있을 수도 있겠군요. 마시면 마실수록 점점 맛있어 져서 거의 마술을 보는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. 옆에 지나가던 나카다 씨에게 슬쩍 물어보니 그게 부르고뉴 와인의 강점이라고 하시더군요.(그런 건가요?)
쥬브레 샹베르땅은 뉘 생 죠르쥬의 동생? 여기서 부터 슬슬 취기가 돌기 시작해 맛에 대한 감각이 애매모호해 져 갑니다만, 약간 바닐라 향에 향신료로 숨김맛을 넣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. 취기 때문에 어쩐지 인상은 좀 약하게 남습니다만, 뉘 생 죠르쥬와 더불어 타닌의 느낌은 가장 확실하게 남기고 간 와인.
꼬르똥 그랑 크뤼는 이중적이라고 해야 하나? 혀에 얹을 때는 부드러운 데 넘길 때는 강력하고, 섬세한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. 외유내강하며 품위가 넘치는 녀석. 이 시점에서 이미 혀와 코가 와인에 중독되어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, 하지만 이렇게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데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데... 가격을 보니... 혼자서는 절대 못 사먹을 녀석. (>_<) 그래, 너 잘났다. 잘 난 녀석은 어떻게 해도 잘나 보인다는 진리를 체험하느라 한 잔 더 마셨습니다.

김재화 씨게서 얘기하시길, 오늘 소개한 와인 중에는 숙성이 더 필요한 것들도 있지만 시음회 전에 확인한 바로는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운송하는 동안에 어쩔 수 없는 변질(정확히는 이런 의미는 아니지만, 어쨌든) 때문에 차라리 지금 마시는 게 낫다 라고 판단해 오늘 소개하게 된 와인도 있다고 하시더군요. 와인은 지식을 통해서 즐길 수 있다지만, 스스로 맛을 즐길 수 있다면 좋다는 이야기가 인상에 남더군요.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, 이국 땅에서 고난을 이기고 일가를 이루고 있는 네고시앙을 하시는 분이 하시는 이야기라 무게가 느껴지더군요.
예전에 같이 동인지를 만들었던 후배와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, 와인에 대해 토론하기보다는 서로 즐기면서 보낼 수 있어서 마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.
하지만, 최근에 미식과 식탐에 대한 회의가 느껴져서 인지 이런 음식에 빠져드는 대신에 예전에 가지고 있던 도전과 모험의 프론티어 정신은 점점 옅어져 가는 게 아닌 가 하는 기분도 들더군요.
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겠지만, 그걸 판단할 확고한 가치관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 타닌의 맛처럼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.
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일테니, 와인이 세월이 갈 수록 스스로를 궁구하듯 하듯 즐겁고 행복할 수록 언제나 자신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.
# by | 2007/10/26 23:57 | Day by Day | 트랙백 | 덧글(0)



